[ 노석종의 조은글 5182호 - 친구 (親舊) ]

학창 시절에 "세 명의 친구를 가지면 성공한 인생이다" 란 말을 들었을 때 매우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살아보니 진짜는 한 명도 어렵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친구나 벗을 지칭하는 용어는 동·서양이 다르고 한·중·일 또한 각각 다릅니다.

 ※ 한국은 친구(親舊)

 ※ 중국은 펑여우(朋友),

 ※ 일본은 도모다찌(友達)를 씁니다.

 

 ‘'붕(朋)’'은 봉황이 날 듯 새 떼가 함께 무리지어 나는 모습이며

 '‘우(友)’'는 서로 손(又)을 잡고 돕는다는 의미입니다. 

 구체적으로

 ‘'붕(朋)'’은 동문(同門) 수학한 벗이고

 '‘우(友)'’는 동지(同志)로서의 벗입니다.

 따라서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함께 하고 뜻을 같이한 벗을 ‘'붕우(朋友)'’라 합니다.

 

 예로부터 그 사람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사귀는 벗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라고 다 친구는 아니며 또한 누구에게나 친구는 누구에게도 친구가 아닙니다.

 성공은 친구를 만들고 역경은 친구를 시험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불행은 누가 친구가 아닌지를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인디언들도 친구를 가리켜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 했습니다.

 역시 친구는 어려울 때 힘이 되는 친구가 진짜 친구입니다.

 

 인간 세상이란 염량세태라서 잘 나갈 때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지만 몰락할 때는 썰물처럼 빠져 나가기 마련입니다.

 현역 시절 잘나가던 친구가 갑자기 몰락하고 병을 얻어 세상을 뜬 후

 빈소가 너무나 쓸쓸한 것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집니다.

 

 오죽하면 옛날에도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고 정승이 죽으면 텅텅 빈다.''라는 말이 생겨났겠습니까?

 많은 이들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니 공백기 동안 진실한 인간관계가 무엇인지 확실히 재정리가 되더라.” 라고 말합니다.

 남편은 집안이 가난할 때라야 좋은 아내가 생각나는 법입니다.

 동양에는 가난할 때의 참다운 친구라는 뜻의 ‘'빈천지교’'란 말이 있습니다.

 

 지금 같은 난세에는 특히나 마음을 툭 터놓고 지낼 친구가 그립습니다.

 이게 《명심보감》 <교우편>에서 말하는 ''급난지붕''입니다.

 

 주식형제천개유 (酒食兄弟千個有), 급난지붕일개무 (急難之朋一個無)

 "술 먹고 밥 먹을 땐 형, 동생 하는 친구가 천 명이나 있지만, 급하고 어려울 때 막상 나를 도와주는 친구는 한 명도 없다."

 현재 나의 친구들이 주식형제인지 급난지붕인지

 동시에 나는 그들에게 과연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반드시 떠오르는 인물이 추사 김정희입니다.

 한 때 잘 나가던 추사가 멀고도 먼 제주도로 귀양을 가보니

 그렇게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누구 한 사람 찾아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소식을 전한 이가 있었는데 예전에 중국에 사절로 함께 간 이상적이라는 선비입니다.

 그는 중국에서 많은 책을 구입해 그 먼 제주도까지 부쳤주었습니다.

 극도의 외로움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던 추사에게 그의 우정은 큰 위로와 감동을 주었고

 추사는 절절한 우정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았는데 그것이 바로 유명한 <세한도>입니다.

 

 세한도라는 이름은 ※ 날씨가 차가워지고 난 후에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안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 (歲寒然後 知松栢之後也)" 라는《논어》구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 보통 인생의 5가지 부자로는  *돈,  *시간, *친구,  *취미, *건강을 꼽는데

 그중에서도 ‘'친구 부자'’야말로 인생 후반이 넉넉한 진짜 부자라고 할 것입니다. 

 

 외롭고 힘든 인생 길에서 따뜻하고 정겨운 우정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친구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어도 주위에 마음을 기댈 친구가 없다면

 그 사람은 필시 불행한 인생임에 틀림없습니다.

 

 세계적 갑부인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Sam Walton)도 임종이 가까워져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니 그에겐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며 크게 후회했다고 합니다.

 결국 "내가 친구가 없는 이유는 내가 그 사람의 친구가 되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좋은 친구를 얻는 일은 전적으로 자신이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한편, 친구로 삼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는 예로부터 "오무(無)" 를 들고 있습니다.

 이는 무정(無情), 무례(無禮), 무식(無識), 무도(無道), 무능(無能)한 인간을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부터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이 아닌가를 살펴야 함이 도리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참된 친구'’란 어떤 친구일까요?

 이와 관련해서 논어의  <계씨편>에는 공자가 제시한 세 가지 기준이 나옵니다.

 

 유익한 세 친구 (익자삼우,益者三友)는 정직한 사람, 신의가 있는 사람, 견문이 많은 사람입니다.

 반면 해로운 세 친구(손자삼우, 損者三友)는 아첨하는 사람, 줏대 없는 사람,

 겉으로만 친한 척하고 성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흔히 친구는 쉽게 네 가지 종류로 나눕니다.

 

 첫째, 화우(花友): 자기가 좋을 때만 찾는 꽃과 같은 친구

 둘째, 추우(錘友): 이익에 따라 저울과 같이 움직이는 친구

 셋째, 산우(山友): 안식처와 다름없는 산과 같이 편안하고 든든한 친구

 넷째, 지우(地友): 언제나 한결같은 땅과 같은 친구

 

 참고로 제갈공명은 "장수(將帥)는 심복(心腹), 정보(情報), 조아(爪牙)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 여기서 ''조아(爪牙)''란 독수리의 발톱(爪)과 호랑이의 이빨(牙)을 의미합니다.

 리더에게 있어 조아(爪牙)는 힘들고 어려울 때 진정한 충고를 해주고 도와줄 수 있는 친구

 또는 적으로부터 위기에 처했을 때 몸을 바쳐 구해줄 수 있는 신하를 말합니다.

 

 요컨대 자기를 보호해주는 강력한 인적 무기로서  공자는 이를 가리켜 ''쟁우(諍友)''라고 했습니다.

 쟁우는 중국의 고대 처세서인《지전》에 등장하는 말인데

 잘못을 솔직히 말해주고 고치게끔 도와주는 고마운 친구를 가리킵니다.

 진정한 벗은 수보다 그 깊이가 중요합니다.

 따라서 내 목을 내주어도 좋을 "문경지교(刎經之交)" 수준의 벗은 아닐지라도

 쟁우(諍友), 산우(山友), 지우(地友) 정도의 친구가 최소한 한 명이라도 있다면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과 리무진을 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정작 여러분이 원하는 사람은 리무진이 고장 났을 때 같이 버스를 타 줄 사람입니다."

 

 미국의 흑인 여성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의 말입니다.